‘대북특사 카드’ 다시 부상…남북관계 돌파구 되나입법조사처 “위기 때마다 전환점 역할”…남북 긴장속 ‘특사 외교’ 재조명
성과 지속성은 한계…제도보완 필요 "사전 환경·미국과 역할 분담이 관건"
[동아경제신문=이은수 기자] 북한이 우리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는 등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대북특사’ 파견이 교착 해소의 주요 수단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위기 때마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던 만큼, 이번에도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대북특사 파견 사례 분석과 정책적 고려사항’ 보고서를 통해 1970년대 이후 역대 정부의 특사 외교를 분석하고, 향후 활용 가능성을 점검했다. 보고서는 최고위급과의 직접 소통이 가능한
대북특사가 분단 상황에서 사실상 ‘비공식 외교 채널’로 기능해 왔다고 평가했다.
대북특사 파견은 시기별로 성격이 달랐다. 박정희·노태우 정부 시기에는 냉전 질서 변화 속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체제 안정이 주요 목적이었다. 1970년대 초 미·중 관계 개선과 1980년대 후반 국제질서 재편은 남북 간 대화 필요성을 키웠고, 특사 파견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추진됐다.
반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는 ‘선(先)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 변화를 유도하려는 전략적 목적이 강조됐다. 특히 김대중 정부 당시 대북특사 접촉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며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가 됐다.
실제 성과도 적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 시절 이후락 특사 파견은 ‘7·4 남북공동성명’으로 이어졌고, 노태우 정부에서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도 특사 파견은 각각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등 굵직한 외교 이벤트의 출발점이 됐다.
다만 한계도 분명했다. 전두환 정부 시기 특사 파견은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고, 전반적으로 합의가 지속되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됐다. 북한의 일방적 합의 파기를 제어할 수 있는 실효적 수단이 부족했던 점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사의 형식도 변화해 왔다. 냉전 시기에는 정보기관장이 비밀리에 접촉하는 ‘밀사형’이 주를 이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파견 사실을 공개하는 ‘공개형’으로 전환됐다. 2006년 '남북관계발전법' 시행 이후에는 대통령 임명장을 받는 ‘임명형 특사’로 제도화됐다.
보고서는 향후 대북특사 활용을 위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우선 특사 파견에 앞서 일관된 대북정책 유지와 신뢰 구축 등 ‘사전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미관계 진전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미국과의 전략적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특사 외교의 고질적 한계로 꼽혀 온 ‘성과의 지속성’을 보완하기 위해 국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특사 활동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제안됐다. 나아가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한 협의 구조 구축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전문가들은 대북특사가 단기간에 긴장을 완화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구조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된 상황에서 ‘특사 카드’가 일시적 해법에 그칠지, 지속 가능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동아경제신문 & dae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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