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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슬로건의 종말…소비자는 장인의 '고집'과 '결핍'에 지갑을 연다

[전문가 기고 / 마케팅의 전환점 ⑤] 김민서 동국대 경영학과 마케팅 초빙교수·연세대 경영학 박사

동아경제신문 | 기사입력 2026/03/05 [23:07]

뻔한 슬로건의 종말…소비자는 장인의 '고집'과 '결핍'에 지갑을 연다

[전문가 기고 / 마케팅의 전환점 ⑤] 김민서 동국대 경영학과 마케팅 초빙교수·연세대 경영학 박사

동아경제신문 | 입력 : 2026/03/0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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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서 동국대학교 초빙교수 (연세대 경영학 박사).    

[동아경제신문=동아경제신문 기자]  1분짜리 쇼츠 영상도 길게 느껴지는 시대다. 몇 초만 지연돼도 기다리지 않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다. 속도는 기본값이 되었고 기다림은 곧 불편함이 된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장면도 벌어진다. 특정 식당은 몇 달씩 예약이 밀리고 명품 매장 앞에는 긴 대기 줄이 형성된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속도를 요구하던 소비자가 왜 오프라인의 비효율은 감수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유행이라고만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 소비자가 반응하는 지점은 ‘얼마나 빨리 제공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쉽게 타협하지 않았는가’다. 말로 설명하는 브랜드보다 기준을 밀어붙이는 브랜드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결국 경쟁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고집과 결핍이 만들어내는 설득력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첫째, 고집의 심리학…과정이 보내는 신뢰의 신호

 

최근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대중의 관심을 끈 이유는 결과물의 수준 때문이 아니었다. 채소의 수분을 잡기 위해 면보를 반복해서 교체하거나 최적의 온도를 찾기 위해 수십 번 팬을 조절하는 집착에 가까운 장면들에 대중이 반응한 것이다.

 

특정 높이에서 일정한 궤적으로 소금을 뿌리고 설탕 실을 여러 차례 다시 뽑아내는 퍼포먼스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브랜드가 가진 기준의 엄격함을 증명했다. 

 

효율의 기준에서 보면 이런 행동은 과잉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소비자 심리의 관점에서는 다르게 해석된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집요한 실행 과정은 브랜드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Cue)로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 집요함을 쏟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기준을 낮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셰프의 손끝에서 보이는 디테일을 통해 주방 관리나 재료 선택의 성실함까지 한꺼번에 추론한다. 결국 고집은 긴 설명보다 강한 신뢰의 신호가 된다.

 

둘째, 결핍의 스토리…완벽함보다 강력한 인간적 몰입

 

신뢰가 고집스러운 과정에서 형성된다면 소비자와의 심리적 유대는 '결핍'의 공유를 통해 완성된다. 고집이 품질에 대한 이성적 확신을 주는 와중 결핍은 소비자가 브랜드의 세계관에 직접 참여하게 만드는 정서적 틈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사례들에서 대중이 가장 크게 공감했던 지점 역시 완벽한 승리의 장면이 아니었다. 이미 정점에 선 대가들조차 자신의 명성을 뒤로하고 패배의 리스크(결핍)를 안은 채 다시금 검증받기를 자처하는 모습, 그리고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스스로의 기준을 증명하려는 도전자들의 태도였다.

 

모든 것을 갖춘 강자의 모습보다 리스크를 감수하며 현재 진행형으로 분투하는 태도에 사람은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한다.

 

여기에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라는 심리 기제가 작동한다. 자신의 취약성을 숨기지 않고 기준을 지키려 애쓰는 태도는 소비자에게 인간적인 접점을 만들어내며 이때 결핍은 채워야 할 약점이 아니라 소비자가 응원과 지지라는 감정을 더할 수 있는 ‘공감의 공간’이 된다.

 

과거의 어려움과 현재의 집요함이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질 때 소비자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축적된 시간의 결과를 구매하게 된다. 요리가 완성되는 순간,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감은 단순한 맛의 평가를 넘어 장기적인 팬덤으로 이어진다.

 

고집과 결핍이 만드는 차이이러한 구조는 특정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이슨은 ‘5126번의 실패’라는 결핍의 기록을 혁신의 가치로 내세우고 애플은 소비자가 확인하기 어려운 내부 회로 기판의 정렬까지 완벽함을 고집한다. 파텍 필립은 육안으로 눈에 띄지 않는 내부 부품에까지 오랜 시간을 들인다.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대신 반복된 기준을 보여준다. ‘우리는 다르다’고 외치기보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한다’는 태도를 드러낸다. 소비자는 이 반복에서 일관성을 읽고 그 일관성에서 신뢰를 형성한다.

 

결국, 무엇을 끝까지 지킬 것인가

 

초반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사람들은 몇 초의 지연은 참지 못하면서도 특정 브랜드 앞에서는 기꺼이 기다리는가.

 

답은 단순하다. 기다림 속에서 그 브랜드의 고집과 결핍을 확인하기 때문이며 쉽게 타협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보일 때 사람들은 시간을 쓰는 선택을 한다.

 

미래의 경쟁력은 단순히 무언가를 더 빠르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소비자가 ‘여기에는 시간을 써도 괜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기준을 얼마나 명확하게 세웠는가에 달려 있다. 브랜드가 감당한 시간의 밀도는 결국 가격의 이유가 된다.

 

이제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을 더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다. 속도는 기본이 되었으며 차이를 만드는 것은 고집과 결핍이다.

 

※ 필자는 경영학 박사로 현재 동국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마케팅 석사, Syracuse University에서 경영학 학사를 마쳤다. 삼성물산 근무를 비롯한 산업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 심리와 서비스 마케팅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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