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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갤러리] 소초 조동화 화백, ‘니금화법’ 색체의 미학 세계에 전파

성창희 기자 | 기사입력 2017/10/13 [17:36]

[지상갤러리] 소초 조동화 화백, ‘니금화법’ 색체의 미학 세계에 전파

성창희 기자 | 입력 : 2017/10/13 [17:36]
작가의 내면세계 반영…운보 김기창 선생 제자



금가루와 수묵을 이용한 독창적인 화풍, 남성적인 스케일과 호방한 기개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화가가 있다. 거장 조동화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조동화 화백은 일제시대 초등학교 1학년 때 붓을 잡아 5학년 때 크레용으로 소나무를 그려서 인두로 지진 그림이 일본민전(국전)에 입선해 재능과 소질을 인정받았다.

그는 이를 계기로 생계를 위해 극장 간판을 그리며 데생 등 회화실력을 키웠다. 그러던 중 박고석 선생에게 서양화를 배우고, 운보 김기창 선생을 사사해 한국화에 입문한다.



운보 선생을 사사하기에 앞서 조 화백은 조선시대 화가 이징의 니금화법 접하고 이를 계승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되살린 니금화법은 먹으로 그린 후 접착제(아교)를 바르고 그 위에 금가루를 묻혀 아주 엷게 바르는 기법이다. 이후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조 화백이 니금화법으로 그린 에펠탑, 세느강 등 프랑스의 풍광은 서양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1994년 파리 갤러리 무방스에서 초대를 받아 동양인으로 박생광 선생 이후 처음으로 파리 초대전을 가진 조동화 화백. 그는 뉴질랜드 국회, 독일 베를린 시장 초대전, 프랑크푸르트 초대전 등 유럽에서 개최된 다수의 초대전을 통해 세계인에 감동을 전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크리스 디츠 박사는 “그의 이미지는 순전히 정신적인 깨우침이었다. 그의 기법은 금분과 서예의 조화로운 기법의 응용으로 동양의 신비적인 세계의 극치”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가 그린 금강산도(10폭 병풍)는 반공활동 이력으로 실제 금강산을 방문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니금화법을 사용해 심상화로서 탄생한 작품이다. 금가루와 먹물의 조화로 화려한 황금빛을 발하는 산수화는 관람객들에게 경탄을 절로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조동화 화백은 10여년전 지병인 당뇨로 인해 눈이 실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에 실(끈)을 감아 색(물감)을 감지하며 힘차게 산수화, 누드화, 성화(예수) 등을 그리고 있다. 이에 기자는 그의 강한 예술혼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최근에는 프랑스 전시회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작품 전시회를 통해 얻은 수익금 중 일부를 프랑스에서 고학하는 청년화가에게 기부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동양화·서양화 등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전 50회, 단체전 500여회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동화 화백. 그는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겠다고 한다. 또한 그는 ‘격노’, ‘거북선’ 등 책을 발간했으며 최근에는 ‘DNA전쟁’을 집필하며 다방면에서 예술적 재능을 꽃피우고 있다.



/2017년 10월 13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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