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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 여원구 서예가, 서예의 전통성을 지키고 至高의 예술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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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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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초 김응현 선생 師事…서예·전각 부문 두각

국내 서예계 세필의 길 열어…내년 11월 구순전

 

구당 여원구 선생은 서예의 길에 평생을 바치고 있는 최고령 현역 서예 대가다. 지금도 대한민국 서예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원구 선생은 “아버지(도산 여운필)가 한학자이셔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한문을 익히고 붓글씨를 썼다. 이후 서울에 상경해 여초(김응현) 선생을 사사(師事), 서예와 전각을 익혔다”고 말했다.

 

구당 선생은 주경야독으로 여초 선생의 법첩을 교재로 한 철저한 가르침을 실천의 수행으로 삼아 생활해 왔다. 이처럼 그는 배움에 빠져 밤을 지새우며 오직 글과 마음이 짝을 이루도록 끊임없이 마음 밭을 갈아왔다.
 

그 결과 1970년이후 동방연서회가 주관하는 행사와 교류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고, 76년부터 국전 6회 연속입선과 특선을 거쳐 1983년에 서예부문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그는 전각에서도 재능을 발휘해 동아미술제에서 전각부문 국내 최초의 수상 영예를 누렸다. 이에 전각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 1999년 제3대 국새 제작에 참여하는 등 돌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전각의 명인이다.

 

이후 여원구 선생은 여초 선생과의 중국 방문에서 세필을 보고 큰 감명을 받고 돌아왔다. 그래서 인사동 덕원미술관에서 국내 최초로 세필로만 전시를 가졌다. 당시 세필 전시는 큰 반향을 일으켜 국내 서예계에 세필의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구당 선생은 “국내 서예가 대부분이 큰 글씨로 전시를 하지 세필을 잘 쓰지 않아 전시장에서는 세필을 보기 어렵다”며 “세필은 글씨의 짜임새와 섬세함이 매력적이고, 세필을 쓸 줄 알아야 큰 글씨를 쓰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구당 여원구 선생은 지난 2012년 인사동 한국미술관(전관)에서 ‘3교 성서전’을 열었다. 이날 불교, 기독교, 유교 등 성서(경전)의 35만자의 전시가 이뤄졌다. 10폭 병풍에 ‘논어’ 전문 1만5937자를 해서로 일필휘지했고, ‘법화경’ 전문을 스승이 광개토대왕 비문을 모태로 개발한 호태왕비체와 해서체로 14만자를 썼다. 밤에는 금강경 전각을 새기고 낮에는 법화경을 붓글씨로 써내려 가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또한 성경의 ‘산상수훈’ 4445자를 6폭병 세필 해서체로 쓰는 등 모든 작업에 2년의 시간을 들였다.

 

구당 선생은 양소헌서법연구원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단국대·동방문화대학원대 등에서 초청받아 서법 특강을 갖는 등 서예 저변확대와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구당 선생은 “서예를 예술성에 중점을 두면 기술에 불과하니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멀리 갈 수 있고 높이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서예(한자)를 접하면 도덕과 윤리관을 익히고 정서함양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우리 서예가들이 중국을 비롯 일본, 싱가폴 등 교류전을 통해 국가간 친교를 다지고, 국위선양과 민간외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예가 학교 교육과 입시 과정에서 배제되어 아쉽다”고 말했다.

 

내년 구순에 들어서는 여원구 선생은 내년 11월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2020년 4월 10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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