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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 변요인 서예가, 전통 서예에 바친 한평생…마음의 밭을 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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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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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해서 삼체로 천자문 일필휘지…서예는 精神·魂 담겨야

 
이당(夷堂) 변요인 선생은 제주 성리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붓과 함께하며 대한민국 전통서예의 맥을 잇고 있는 서예가다.
 
변요인 선생은 7세부터 붓을 잡아 고등학교 때 족보글씨를 쓸 정도로 주변으로부터 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1966년 서울로 상경해 동강 조수호 선생을 사사(師事), 1974년 제23회국전에 입선하며 서단에 발을 들였다. 당시 그가 출품한 ‘이백문서’는 활달한 기운생동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활발한 활동과 더불어 1985년 헌법재판소의 한글 현판을 쓰기도 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명함(글씨)을 쓰는 등 필력을 선보였다.
 
특히 변 선생은 2000년대 들어서며 완숙의 경지를 보여준다. 당시 예술의 전당 개인전에서 선보인 제갈공명의 ‘출사표’는 한국 서단의 한 획을 긋는 대작으로 평가된다. 또한 2002년 한일월드컵행사 기념 전시회 출품작인 ‘이백초서가행’은 중국서법가협회 유병삼 부주석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변요인 선생은 “자신만의 서체가 처음부터 나올 수는 없다. 선인들의 서체를 모방해 익히다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서체가 나온다. 그리고 작품에는 시대성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변 선생은 서예의 오체를 두루 섭렵하고, 자신만의 서체인 ‘삼체’를 창시, ‘삼체천자문’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해서’는 구양순, ‘행서’는 왕희지, ‘초서’는 회소의 글씨에 뿌리에 근간을 두고 한 획 한 획에 인생의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서예는 선의 예술로 특히 초서는 예술성·회화성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다. 그런데 초서에 기운생동을 담아내려면 심신수양이 필수”라면서 마라톤 대회 7회 완주 등 꾸준한 운동과 더불어 매일 서체의 수련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한국서예단체 협의회 발족, 한국서예포럼, 한국서가협회 창립 등에 동참해 힘쏟고 수백명의 후학을 양성하는 등 전통서단의 명맥유지에 큰 공헌을 해 온 변요인 선생. 그는 현재 한국 서가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변 선생은 “물욕을 버리고 정신수양과 진리를 탐구하는데 서예만큼 좋은 게 없다”며 “일부 서예가들은 서예의 현대화를 추구한다면서 전통을 무시하는데, 정신과 혼이 깃들지 않으면 서예라 할 수 없다. 전통속에 진리가 있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전통서예에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 변요인 선생. 그는 70여년 하루도 붓을 놓지 않고 매일 2000자를 쓴다. 이는 그의 철학인 以筆耕心田(붓으로써 마음의 밭을 갈다)을 엿볼 수 있다.  
 
/2019년 5월 14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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