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5-24(금)

쌍용석재 강현구 대표, 불교 조형물 45년 외길…석공예 장인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9.02.18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gaa2-1.jpg

 

gaa2-2.jpg

 

전국 유명사찰 불상·석탑 등 다수 시공
기획·설계·제작 ‘원스톱’…‘명장’으로 칭하기도


 석공예에 외길 50여년을 받쳐온 장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쌍용석재 강현구 대표(이하 장인)다.
 
충남 부여 태생인 강 장인은 16세의 어린나이에 배움보다 생활고 해결을 위해 석공의 길을 택했다. 조그만 공장에서 2~3년간 석공의 기초를 익힌 그는 배움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박찬수 선생 밑에서 수년간 기량을 쌓아 독립하게 된다.
 
강현구 장인은 “처음에는 현구석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런데 어느 스님이 우리 형제가 함께 일하는 것을 보고 두마리 용이 승천한다는 의미의 ‘쌍용석재’라는 이름을 지어줘 상호를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석가탑의 제조자인 삼국시대 최고의 석공 아사달의 일화에서 보듯 우리나라 석공예는 불교미술과 궤를 같이한다. 불상·석탑 등 조형물을 완성하기 위해 망치와 정 등을 이용해 돌을 깎아 생명력을 불어넣는 석공예는 구도의 길이나 다름없다.
 
강 장인은 서울 봉은사 미륵불을 비롯해 아차산 용암사, 용인시 용덕사, 충주시 장왕사, 서울 은평구 보덕사, 경북 청송군 청룡사 등 유명 사찰의 탑과 미륵불상, 천수천왕 사천왕 등 규모 있는 작업들을 수행하며 기술과 솜씨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평택 수도사 팔상탱화, 제주도 월성사 보수공사, 포항 기원정사의 3층 신라석탑을 제작·시공했다. 이처럼 석공예의 기능을 인정받으면서 스님들의 후원은 오늘날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강 장인은 “부처상이나 석탑 등 불사에 연관되지 않은 석조물, 조형물도 한다. 3.1운동 기념탑, 목포 100주년 기념탑, 지난해 10월에는 여주 영릉의 세종대왕 동상 이전·보수공사를 맡아 연말에 마무리 했다”고 말했다.
 
거듭 그는 “우리는 난이도 높아 타사가 못하는 일을 깔끔하게 처리한다. 이는 장기근속자들의 축적된 노하우와 중량물을 다룰 수 있는 전문장비 등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특히 세종대왕 동상 이전은 미세한 흠집도 발생하면 안 되는 고난도 공사였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쌍용석재는 주문이 들어오면 주변 환경을 답사한 후 분석, 기획을 한다. 그리고, 발주처의 의견을 반영해 설계·제작·시공에 이른다. 쌍용석재는 값싼 중국산 돌이 있지만, 국내산 포천석과 황금석을 원재료로 고집하고 있다. 이는 장인의 자존심이 아닐까한다.
 
올해로 환갑을 맞이한 강현구 장인은 석공예기능사, 한식석공(문화재 수리기능자) 등 국가기술자격증 보유에 그치지 않고, 명장 반열에 오르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그는 망치를 들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죽는 날까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강현구 장인은 “석공예 산업이 3D업종이라 젊은피 수혈이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석공예 산업이 발전·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관심과 후진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친후 강 대표와 악수를 하면서 두텁고 커다란 손에 깜짝 놀랐다. 장인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다며 장인으로서 마지막 소원은 명장으로 인정받는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2019년 2월 18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태그

전체댓글 0

  • 61448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쌍용석재 강현구 대표, 불교 조형물 45년 외길…석공예 장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