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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용 화백, 목지화를 개척한 선구자
    지난달 개최된 인사동 갤러리M 초대전을 방문한 외국인 부부와 찍은 기념사진. 박 화백은 이번 전시로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30년 목지공예 집념, 한국판 루브르박물관 설립 ‘꿈’   30여년 목지(木紙)화에 청춘을 바쳐온 박주용 화백. 그는 목지화가 생소한 시절, 개척자 정신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박주용 화백은 천연나무종이(木紙)를 국내최초로 개발, 이를 계기로 ‘아이또바’를 설립, 목지 보급에 주력했다. 그리고 박 화백은 목지와 인연을 맺은 지 20년째 되는 해, 목지 판매가 아닌 목지화·목지공예에 도전을 결심,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박 화백은 “화가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 듯 저는 나무를 물감삼아 마음과 손길이 가는 대로 작품을 만든다. 그래서 미국, 이태리 등 여러 국가에서 천연목지 64종을 구입,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어렵게 구입한 목지로 가구, 꽃병 등 생활소품으로 재창조된 그의 작품은 절묘한 색감과 문양으로 한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이에 그는 지난 2013년 한국예술문화재단총연합회로부터 목지공예 명인 선정과 문체부 목지공예부문 장관상 수상, 목지공예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주목받았다.   박주용 화백은 자신의 스타일로 가장 한국적인 美를 전파하기 위해 한국의 ‘루브르 박물관’을 설립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 첫걸음으로 서울에 ‘베니아트홀’ 전시관을 설립, 운영해왔으나 재개발로 철거되어 좌절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좌절에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지난 2015년 경기도 광주에서 재기, 전시관을 재개관했다.   이후에도 그는 올해 예정돼 있던 25년만의 개인전을 위해 작품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지난달 13일~19일 인사동 갤러리M에서 열린 개인초대전에는 국내외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편, 박주용 화백은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천년을 기다려온 통일의 빛’이라는 작품을 제작해 전라북도와 최근에는 고향인 무주군에 기증했다. 앞으로도 전국 광역 시·도에 작품을 기증, 이를 바탕으로 남북통일의 초석이 되고 싶다는 것이 박 화백의 바람이다.   /2020년 6월 25일 동아경제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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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5
  • 청담 한기옥 도예가, 5대째 전통 도예魂 잇는 분청사기 명인
        국내 최초 박지기법 응용한 실경산수 도자기 제작전통·현대 접목…최근 산수에 비구상 문양 도입 시도   청담 한기옥 도예가는 5대에 걸쳐 분청사기 가업을 이으며 도예혼을 불태우고 있는 도예 명인이다. 그의 고조부 한영석 옹은 왕실 도자기 제작소 일원으로 조선 말기 도예가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경기도 광주에 자리잡아 현재에 이르고 이다.   한기옥 명인은 어린시절부터 학문보다 공작이 좋아 초등학교 때부터 조각을 하고 도자기에 문양을 새겼다. 그는 분청사기 대가인 아버지(한창문 옹)를 따라 산지에서 흙을 채취해 제토·성형·물레·조각·소성 등 모든 도예 과정을 익히며 자연스레 가업을 잇게 됐다.   흙과 불의 오묘함에 빠져 50여년 분청의 외길을 걷고 있는 한 명인은 “분청은 순수하고 소박하지만, 이면에는 화려함과 강함을 품고 있다. 분청은 청자·백자에서 찾을 수 없는 섬세함과 깊이가 있고, 청자·백자에 못지않은 온화함과 품위가 있다”고 말했다.   한기옥 명인은 전통만을 고수하지 않고 끊임없는 탐구·실험 정신을 통해 전통도자기 기법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 전통과 현대를 융합해 새로운 도자문화를 창출했다.   그 결과 국내 최초로 박지기법을 응용한 실경산수 도자기를 선보였다. 또한 한국 화조화의 부드러움을 각으로 선묘하고 채색한 새로운 느낌의 분청을 제작함으로써 차별화와 독창성을 표출하고 있다.  이에 그의 작품은 故김대중 대통령의 교황청 국빈방문시 교황 바오로 2세에 선물됐고,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등 각국 귀빈들의 선물로 자주 사용돼 왔다.   한 명인은 감상용 작품뿐 아니라 실생활에 사용 가능한 실용적 도예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의 후원자인 용인로뎀파크(김운배 대표)의 의뢰로 개발한 친환경 수목장용 황토함을 비롯, 고기굽는 가마를 개발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도자기를 모자이크 식으로 벽화 제작에 응용, 건축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하고 있다.   한기옥 명인은 지난 2013년 대한민국(국보) 도예부문 명인대상, 2019년 제12회 대한민국 문화미술 명인대전 도예부문 명인대상에 이어 지난 4월 아시아 명인 제7호에 선정됐다.   한 명인은 “도예가의 길이 쉽지 않다.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 때 부인과 가족의 힘이 컸다. 고행의 이 길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딸의 요청에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2020년 5월 12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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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2
  • 송월요 김성태 명장, 전통과 현대가 접목한 ‘무지개 문’
        4대이은 도자 魂…한가족 2명 명장 ‘유일’   송월(松月) 김종호 명장의 차남으로 지난해 대를 이어 이천시 도자기 명장에 선정된 송붕(松朋) 김성태 명장.  그는 조부 김완배 도공부터 아버지, 본인, 아들(김동희)까지 4대가 전통도자기의 혼을 잇고 있는 송월요에서 지난 1977년 도예입문 이래 43년 외길인생을 걷고 있다.   김성태 명장은 “한 집안에서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명장이 나온 건 우리가 유일하다. 예전에는 조각을 했는데, 십여년 전부터 물레까지 배워 태토, 성형, 조각, 유약, 소성(전통가마)에 이르기까지 모두 섭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천시 도자기 명장은 이전에는 성형, 조각, 서화 등 분야별로 선정했으나 지난 2017년부터는 모든 공정을 통과해야만 명장으로 선정된다. 김성태 명장의 경우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균열 전통 청자’ 등 전통도자를 재현하는데 힘써왔다. 또한 6~7년 전부터는 전통과 현대 기법을 접목시킨 ‘무지개 문’이라는 도자기를 선뵈면서 국내외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김 명장은 “전통 도자기를 빚으면서 우연히 지반층이 색깔별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발견, 영감을 얻어 ‘무지개 문’기법(특허)을 개발했다. 여러 색깔의 상감을 만들어 원하는 색을 반복해 덧칠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조각 깊이와 각도에 따라 문양과 색의 심오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캐나다 도예인들과 정보·문화 교류를 통해 전시회 및 상호방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태 명장은 청자, 백자, 분청, 진사 등 모든 종류의 도자기법을 섭렵했다. 특히 전통 가마의 소성기법을 선호한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불의 오묘함을 전수받아 전통 청자의 고운 빛깔을 재현하고 있다.   김 명장은 “해외진출이 쉽지 않은데 국가적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 또 도예인들의 환경이 넉넉지 않아 생활자기에 치중하다보니 전통기법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20년 3월 10일 동아경제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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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0
  • 장인의 魂이 빚어낸 ‘맞춤양복’
      벤지양복점 박장일 대표, 맞춤양복 56년 외길“고객이 맞춤양복 입고 만족할 때 행복하죠”   벤지양복점 박장일 대표(사진)는 56년 맞춤양복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다.박장일 대표는 “맞춤양복만의 가치는 오직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귀한 옷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맞춤 양복은 단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해 신체 곳곳의 치수를 꼼꼼히 재고, 이를 토대로 재단, 가봉, 재봉 등 정성스런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제작된다”며 4~5곳의 수치만 재 수선하는 기성복과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때 기성복의 대중화로 맞춤양복을 찾는 고객들이 뜸해지면서 유명 양복점이 하나, 둘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한 발 앞서 트렌드를 선도하고 고객의 니즈에 부응해 체형의 결점을 보정토록 하는 등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박 대표가 10대(60년대 초반)에 입문, 지금까지 만든 양복만 해도 어림잡아 수천 벌은 될 것이다. 양복 한 벌을 만드는 데 수천 번의 바느질을 해 눈 감고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경지에 달했다.   그 결과 국무총리(이낙연) 등 정·재계 인사와 유명연예인 베스트드레서(송해, 김성환 등)가 주고객이다. 또한 최근에는 젊은층 고객들의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박 대표는 “올해는 단색보다 줄무늬와 체크가 대세다. 그리고 중·장년층도 fit 스타일로 전통적인 정장 느낌을 살리면서도 상의는 허리선을 강조하고, 어깨는 좁게, 폭은 몸에 꼭 맞게 타이트한 스타일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거듭 그는 “바지의 경우 젊은 층은 앞 주름 없이 슬림핏으로, 기장은 앞 기장이 구두 등에 많이 접히지 않을 정도로 짧게 입는다”고 설명했다.   박장일 대표는 고객을 대할 때 내 가족처럼 여겨 고객이 원하는 색상과 원단, 스타일을 꼼꼼히 체크한다. 또한 한 번 고객은 평생고객이라는 개념으로, 몇 년이 지나 고객의 체형이 변한 경우에도 양복을 수선해 준다. 그렇다보니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이 곧 단골손님이 되고 있다.   이처럼 방문하는 고객이 다양한 계층이고, 많은 고객들이 10~30년 이상된 인연들이다보니 벤지양복점은 때로는 사회 시류에 대한 정보를 교환, 만남의 장이 되고 있다.   “양복은 유행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고객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만족스러워 기분 좋게 점포를 나갈 때 가장 행복하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2019년 10월 28일 동아경제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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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8
  • 쌍용석재 강현구 대표, 불교 조형물 45년 외길…석공예 장인
        전국 유명사찰 불상·석탑 등 다수 시공기획·설계·제작 ‘원스톱’…‘명장’으로 칭하기도  석공예에 외길 50여년을 받쳐온 장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쌍용석재 강현구 대표(이하 장인)다.   충남 부여 태생인 강 장인은 16세의 어린나이에 배움보다 생활고 해결을 위해 석공의 길을 택했다. 조그만 공장에서 2~3년간 석공의 기초를 익힌 그는 배움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박찬수 선생 밑에서 수년간 기량을 쌓아 독립하게 된다.   강현구 장인은 “처음에는 현구석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런데 어느 스님이 우리 형제가 함께 일하는 것을 보고 두마리 용이 승천한다는 의미의 ‘쌍용석재’라는 이름을 지어줘 상호를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석가탑의 제조자인 삼국시대 최고의 석공 아사달의 일화에서 보듯 우리나라 석공예는 불교미술과 궤를 같이한다. 불상·석탑 등 조형물을 완성하기 위해 망치와 정 등을 이용해 돌을 깎아 생명력을 불어넣는 석공예는 구도의 길이나 다름없다.   강 장인은 서울 봉은사 미륵불을 비롯해 아차산 용암사, 용인시 용덕사, 충주시 장왕사, 서울 은평구 보덕사, 경북 청송군 청룡사 등 유명 사찰의 탑과 미륵불상, 천수천왕 사천왕 등 규모 있는 작업들을 수행하며 기술과 솜씨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평택 수도사 팔상탱화, 제주도 월성사 보수공사, 포항 기원정사의 3층 신라석탑을 제작·시공했다. 이처럼 석공예의 기능을 인정받으면서 스님들의 후원은 오늘날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강 장인은 “부처상이나 석탑 등 불사에 연관되지 않은 석조물, 조형물도 한다. 3.1운동 기념탑, 목포 100주년 기념탑, 지난해 10월에는 여주 영릉의 세종대왕 동상 이전·보수공사를 맡아 연말에 마무리 했다”고 말했다. 거듭 그는 “우리는 난이도 높아 타사가 못하는 일을 깔끔하게 처리한다. 이는 장기근속자들의 축적된 노하우와 중량물을 다룰 수 있는 전문장비 등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특히 세종대왕 동상 이전은 미세한 흠집도 발생하면 안 되는 고난도 공사였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쌍용석재는 주문이 들어오면 주변 환경을 답사한 후 분석, 기획을 한다. 그리고, 발주처의 의견을 반영해 설계·제작·시공에 이른다. 쌍용석재는 값싼 중국산 돌이 있지만, 국내산 포천석과 황금석을 원재료로 고집하고 있다. 이는 장인의 자존심이 아닐까한다.   올해로 환갑을 맞이한 강현구 장인은 석공예기능사, 한식석공(문화재 수리기능자) 등 국가기술자격증 보유에 그치지 않고, 명장 반열에 오르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그는 망치를 들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죽는 날까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강현구 장인은 “석공예 산업이 3D업종이라 젊은피 수혈이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석공예 산업이 발전·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관심과 후진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친후 강 대표와 악수를 하면서 두텁고 커다란 손에 깜짝 놀랐다. 장인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다며 장인으로서 마지막 소원은 명장으로 인정받는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2019년 2월 18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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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18
  • 심천요 김진현 도예장인, 불의 요변에 의해 도자기에 색을 입힌다
    代 이은 전통가마 고수... 천년 비색 계승 발전 40여년 세월동안 흙, 불과 함께 살아온 심천 김진현 도예장인(이하 장인). 그는 선친인 심천(深泉) 김경종 도예가(故)를 사사(師事), 2대째 전통가마의 맥을 잇고 있다. 어려서부터 선친의 어깨너머로 성형 및 조각, 유약 등 까다로운 소성의 과정을 익힌 그는 1978년 본격적으로 전통도자의 맥을 이은 몇 안 되는 도예장인이다. 김진현 장인은 “전통가마를 고수하신 아버지는 청자·백자·분청 중 분청에 남다른 애착심을 보이셨다”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분청과 청자·백자·진사의 전승도자의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전통 도자의 정신을 계승하며 새로운 도자 세계를 개척해 왔다. 도자기는 소성(燒成)으로 완성되어 나오는 불의 예술이다. 심천요에서 공들여 완성된 전통가마는 가스가마에서 볼 수 없는 요변에 의해 빛깔과 무늬를 도자기에 입혀내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색과 다양한 요변에 푹 빠진 것이 그가 전통가마를 고수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김진현 장인의 분청상감도화흑채인화문호, 분청상감목단인화문호 등 분청자기를 보면 적절한 공간미와 더불어 한국적인 유려한 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는 최근 불의 변화를 다스리는 진사 요변에 푹 빠져들어 중국 송·원대 국보급 작품에 쓰인 기법을 롤모델로 요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통의 계승에 머물지 않고 이 시대에 걸맞은 작품을 완성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김 장인은 “가을 홍옥은 태풍에 시달리고, 일조량을 많이 받지만 잎사귀에 가려진 설익은 부분이 뭔가 욕구를 불러온다.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진사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나는 비취색의 우주를 만들고 싶어 진사를 여러 번 작업했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전시를 하려면 끊임없이 도자기를 빚어야 한다”고 말했다. 거듭 그는 “내가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가족과 형제들의 격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작업을 통해 대작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도예 문화를 지키고 차세대들이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좋은 도자기의 문화를 뿌리내리도록 하는데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김진현 장인. 그는 부친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부친의 호(深泉)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내달 6~13일 자카르타에서 개최되는 장애인아시안게임 한국관에서 전세계인들을 만난다. 사진설명: 분청상감목단인화문호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김진현 도예장인. /2018년 9월 27일 동아경제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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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초대석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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