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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수 화백, 감성공간에 행복의 숲 ‘쑥쑥’
        동·서양화 융합…번짐·스며듦·여백으로 감성공간 ‘창출’ 동·서양화를 융합해 독창성과 자연의 색을 담고 있는 서양화가 김남수 화백. 그는 캔버스 위에 광목과 한지를 사용한 ‘감성공간(感性空間)’테마 연작으로 힐링을 전달하고 있다. 김남수 화백은 전북 익산에서 출생, 중학교 시절 외부 미술대회 수상으로 재능을 발견했지만, 가정형편상 서울 교대로 진학하게 됐다. 이후 교직(現 신정초등학교 교감)에 몸담으면서도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정물, 풍경화를 그리고 공모전(비구상 부문)에 참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9회 입특선했다. 또한 홍익대 대학원에 진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회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달랐다. 이처럼 김 화백은 서울 교대를 거쳐 34년 교편생활을 하면서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 애틋함이 컸다. 그래서 전국 산을 찾아다니며 자연과 고찰(古刹) 등에서 뿜어내는 향기를 담아 지친사람들에게 힐링과 생동감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그는 자연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산속의 나무, 풀, 꽃, 돌맹이, 이끼 낀 바위 등에서 느껴지는 심상을 추상적으로 재구성, 오브제 작업을 거쳐 10여년 전부터 광목과 한지를 사용하게 됐다. ‘감성공간’을 테마로 삼은 것도 이 때부터다. 김 화백의 ‘감성공간’을 보면 캔버스에 광목천을 씌우고 아크릴물감과 잿소를 사용, 수차례 밑칠하고 얇은 한지(안경지)를 발라 바탕을 만든다.  이는 번짐과 스며듦의 효과로 자연스런 발색을 연출,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착시효과로 편안함과 색의 중첩을 통한 깊이있는 화면을 구성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여백을 통한 시원함과 간결·담백한 공간구성을 통한 여유로움으로 힐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변화가 없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다”라는 김남수 화백. 그는 “젊은 시절 작품이 향토적 느낌의 갈색이 주조를 이뤘다면, 자연을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시원한 느낌의 푸른색과 최근에는 녹색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힐링의 전달뿐 아니라 새로운 사유(思惟)를 더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간의 작품과 비교해 여백을 특히 강조한 김남수 화백의 최신작은 오는 19일까지 개최되는 개인초대전(서울 양천구 로운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2021년 6월 11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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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1
  • 정성희 화백, 자신의 삶의 여정을 함축한 ‘꽃의 미학’
      자유롭고 솔직한 내면 표현 추상화폭에 담아 자신의 아름다운 여정을 노래하며 ‘꽃의 미학’을 캔버스에 담아 생명력을 전하는 화가가 있다. 서양화가 정성희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정성희 화백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 미술교사를 꿈꿨으나 어려운 집안형편에 학비마련을 위해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울산대(미술대학)를 어렵게 졸업했다. 이후 결혼 후 상경, 미술학원을 개원하면서 회화의 끈을 이어갔다. 정 화백은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예술가는 그림과 함께 산다’는 신념으로 한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2002년 미술세계 대상전 대상과 200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등 순풍을 탔다.  이후 그는 프랑스 미술대학(보자르)에서 단기 코스 수업과 막두밀 아트페어에 출품, 관심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를 계기로 정 화백은 프랑스·독일 등에서 호텔(로비)과 골프장 전시회 투어 등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정성희 화백은 초기에는 여행지에 대한 압축된 인상에 기호학적 상상력이 더해진 반추상 ‘길 위에서 만든 풍경’시리즈를 선보였다. 이후 오방색이 사용된 색조각으로 바다·섬·호수·물 등을 표현했는데, 일종의 추억과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정 화백은 2년전부터 ‘꽃’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현실의 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처럼 바라보고 감정을 실은 ‘꿈속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흔들린 사진을 연상시키는 꽃의 표현은 여러 사연들이 뭉개져 있는 신비감으로 아름답고 싶은 자신의 내면과 삶을 투영하고 있다. 정 화백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었으나, 추상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게 재미있어 추상에 집중해 왔다”며 “젊은시절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나의 일상 일기 같은 것을 표현했다면, 나이가 들면서 색은 강렬해도 현란하지 않은, 그리고 여백을 통해 내제되고 응집된 내면을 표현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작의 즐거움으로 붓과 함께한 인생을 걸으며 마지막 순간에 ‘나는 그림과 함께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는 정성희 화백. 그는 23세때부터 아동미술에 종사하며 에땅어린이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으며, 앞으로 경북 울진에 어린이미술관과 갤러리를 마련하는 것을 소망하고 있다. 정 화백의 작품은 하반기 개인전과 10월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를 통해 만날 수 있다. /2021년 6월 10일 동아경제 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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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0
  • 김호남 화백, “누드를 통해 사람마음의 향기를 담았죠”
      김호남 화백, “누드를 통해 사람마음의 향기를 담았죠” 해부학 기반 사실적 묘사…색과 음영으로 공감각 표현 “내 회화의 스승이 있다면 르누와르의 색채와 피카소 표현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영향으로 일본 회화에 뿌리를 둔 한국 인물·누드화의 맥을 탈피, 독창적 세계를 구축한 김호남 화백의 첫 일성이다. 김호남 화백은 “처음에는 인물을 그렸는데, 인물을 그리려면 인체를 알아야 해 누드를 그리게 됐다. 그런데 누드는 겉모습만 보고 그리는데 해부학을 모르면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며 “그래서 일찍이 근육, 뼈, 핏줄 등 해부학을 별도로 공부해 인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모나리자를 그릴 때 얼굴근육을 섬세하게 표현해 명화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 중 1990년대 캔트지에 크레파스로 그려진 누드화 작품 ‘피아노’를 보면 20세 여인이 피아노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 누드화가 인체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중시한다면 김 화백의 누드화는 여인의 얼굴을 통해 모델의 감성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김호남 화백은 “저는 절대로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는다. 단순히 사진을 보고 모사해서는 1차원에 그쳐 3차원(입체성), 그 이상의 4차원적인 것(개성)을 담아낼 수 없다. 그래서 저는 직접 모델을 보면서 그리고, 정면 구도를 피하지 않고 개성이 드러나는 얼굴을 중시한다. 그리고 의도적인 색채 사용을 통해 분위기, 감성과 같은 4차원적인 요소를 담아낸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인 人物(권세은양)을 보면 그림속 여인은 단아한 이목구비에 그윽한 눈길이 인상적이다. 강렬한 색의 의상과 정적인 소재의 책이 대비되면서도 생동감 있는 소녀의 표정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처럼 그의 최근작들은 대상이 되는 인물의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을 넘어 인물의 개성이나 인간성, 영혼까지 느끼게 해주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물·누드화 이외에도 풍경화, 추상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 화백은 최근 추상화를 통해 작가의 철학을 담아내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올 가을에는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어 지난해 열리지 못한 김호남 화백의 팔순개인전이 개최되기를 희망해 본다.  /2021년 5월 25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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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5
  • 유재민 화백, 물아일여의 경지로 담아낸 ‘산의 메아리’
      사포 위 붉은색에 음양오행…행복 바이러스 전파 유재민 화백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포 위에 산(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기운을 화폭에 담고 있는 서양화가다. 유 화백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재능을 보여 서라벌예대에 진학, 졸업후 인천 선인중·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당시 그는 수업에서 착안, 사포 위에 그림을 그려 국전에 입선(1969년)했으나 부족함을 느껴 교편을 던지고 1982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5~6년을 보냈다. 유재민 화백은 “유학 후 사업을 하게 됐으나 한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이후 건강을 잃으며 사업이 기울었는데, 당시 저를 지탱해준 아내와 그림만이 위안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굴곡진 삶의 현장을 닮은 거친 사포 위에 잿소를 3번이상 발라 캔버스를 대체한다. 붓이 닳아 부서질 정도의 열정으로 사포 표면의 물성과 질감을 활용하여 인생을 관조하며 터득한 삶을 본질을 산(자연)에 투영하기에 전해지는 기운이 남다르다. 특히 그는 동양사상인 음양오행에 기반한 산, 물, 돌, 흙, 나무 등 소재와 강렬한 양의 기운이 담긴 붉은색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유 화백은 “북한산을 비롯, 전국 명산은 모두 돌아다니며 자연과의 대화를 ‘산의 메아리’라는 테마로 작업해 왔다. 산에 가서 산과 대화하면 산은 대답을 한다. 산은 어머니와 같은 그런 푸근함이 있다. 저는 사실적 그림보다는 사물을 재해석한 심상화를 그린다”고 말했다. 거듭 그는 “딸을 시집 보내는 심정으로 작품에 정성을 담는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그 집안의 액운을 막아주고 좋은 기운을 전달하기를 기원한다”며 “앞으로 여건이 허락된다면 미술관을 설립,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희가 넘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신사회 회장, 청관회 초대회장, 인천 미협 고문 등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재민 화백은 오는 9월 3일 하인천 도담에 있는 갤러리에서 22회 개인전을 준비 중에 있다. /2021년 4월 21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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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1
  • 한용국 화백, 심상에 투영된 제주의 자연 풍광을 담다
        원근법 따른 채색의 변화 ‘독창적’…과거·현재·미래 상징 서정성 짙은 제주의 풍광을 심상으로 재구성해 수채화 화폭에 담고 있는 한용국 화백. 그는 제주 출신으로 초기에는 들꽃이야기, 그리고 바다 시리즈 등 자연을 그렸다. 이후 30대 초반 대학원(경기대 서양학과)에 입학하며 서울에 상경, 인사동을 다니면서 옛 가구와 고사성어(전각, 족자) 등을 한국의 자연과 접목한 작품들에 5~6년 매진했다.  이에 지난 2006년 7번째 개인전인 ‘옛 이야기’展을 고향에서 개최, 고유의 서정과 향수가 농축된 현대적 미감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한용국 화백은 “오랜만에 제주로 돌아갔더니 예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해송(海松)을 누가 잘라 사라져 버렸더라. 그래서 개발로 변화되는 제주의 옛 풍광을 현재의 풍광(인간과의 조화)과 융합시키고 싶어 ‘삶의 자리’를 테마로 삼았다”며 “눈앞에 비친 아름다운 일출 풍광에 실제 자연에는 없는 소나무가 배치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 화백은 매주 토요일이면 개발이 덜 된 곳을 찾아 아름다운 풍광을 화폭에 담고 있다. 다만,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아닌 그가 바라보는 자연과 물아일체 되어 순간의 심상에 동화된 자연을 담아내는 점이 일반적인 풍경화와 차이가 있다. 특히 그가 지난 시간 그려온 들꽃, 바다, 배 등 그간의 작업들, 즉 작가의 삶이 ‘삶의 자리’에 응축되어 있다. 한 화백은 유화로 그림을 그리지만, 채색에 있어 수채화와 유화의 두 가지 묘미를 수렴해 한 화폭에 펼쳐낸다. 수채화의 번지는 맛과 무겁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유화만의 색상을 캔버스에 표출, 한국화적 느낌을 준다. 한용국 화백은 “3~40대에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그림을 그리고픈 욕구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는 내가 좋아서 하는 그림이 진실 되고 현실적이라면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단 몇 명만이라도 소통이 된다면 작가로서의 존재감이 대중들에게 회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화백은 내년 개인전에서 300호, 500호 대작을 선보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21년 4월 16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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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6
  • 신경미 화백, 캔버스에 봉황을 품다
        서양화 기법과 동양 정서의 조화 봉황 화가로 알려진 신경미 화백. 그는 봉황, 물고기, 여인 등을 소재로 자신만의 생각과 신념을 화려한 채색과 구도로 화폭에 녹여내고 있다. 신경미 화백은 천경자 화백(故)의 고향(전남 고흥)에서 성장하며 그녀를 롤 모델로 삼았다. 이후 결혼후 대구 팔공산 끝자락 작업실에서 무명화가로 녹록치 않은 삶을 꾸리면서도 봉황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저는 원래 새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반쪽끼리 만나 온전한 한 쌍을 이룬다는 ‘비익조’에 감응해 소재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저의 뜻을 온전히 담기위해 더 큰 의미를 품고 있는 봉황을 선택했다”며 “제가 그리는 봉황은 머리, 몸통, 어깨, 날개 등 부위마다 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봉황은 상서롭고 아름다운 전설의 새다. 수컷인 ‘봉’과 암컷인 ‘황’이 합쳐진 단어로 봉황을 곁에 두면 부부 금슬이 좋아질 뿐 아니라 자손 번창과 복이 따른다고 알려져 있다. 신 화백의 작품에는 가끔 물고기와 여인이 등장하는데 물고기는 부귀와 자손번창을 상징, 봉황과 공통점이 있다. 비상하는 봉황이 신 화백이 추구하는 이상적 표현이라면, 물고기와 여인은 우리 어머니 삶을 상징한다. 신경미 화백의 작품을 보면 동양의 정서가 서양화 기법과 융합되어 신선한 충격을 더한다. 특히 봉황은 전통 오방색의 다채로운 색상으로 채색되어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강렬한 선과 색채, 대담한 형태 그리고 거친 붓질 등 그의 그림을 접한 일부 사람들은 남성 작가로 착각할 만큼 힘 있고 호방하다.  해외 전시 때면 작품과 함께 한복을 입고 봉황을 그리는 퍼포먼스로 집중조명을 받기에 한복을 몇 벌씩 준비한다는 신경미 화백. 그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 화백은 “봉황을 그리기 위해 국내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외국 자료까지 찾아가며 연구했다. 아직도 봉황을 품기에는 의미가 너무나 거대해 평생의 테마로 삼으려 한다. 올해는 한 화폭에 봉황 2021마리를 그리는 도전해보려 한다”며 자신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는 아니지만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 집중하며 다작하고 있다고 겸손해 했다. 올 하반기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라는 신경미 화백은 최근 대구 금호동에 20년만에 ‘봉황이 날다‘ 화실을 마련해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2021년 4월 12일 동아경제 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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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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